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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목회자와함께
 
 
 

작성자
 
최목사
작성일
 
2018/02/03 11:41:53
조회수
829
글제목
 
충성된 일꾼으로 살기
링크
 


 충성된 일꾼으로 살기(딤후 2:1-13)
 
 설교를 늘 위로를 하는 설교만 하면 좋은데, 그러면 주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리들에게는 위로만 하셨습니다. 배고프면 먹을 것 주고, 아프면 치료 해 주고, 슬프면 위로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위로만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육적인 구원만 받을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의 고통만 이길 뿐이었습니다. 저 영원으로 이어지는 축복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의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복을 누렸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교회에서 은혜만 누리는 사람들은 교회를 끝까지 사랑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자기의 욕구만 채우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다 해지면 교회를 떠납니다. 하지만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끝까지 지킵니다. 목사가 떠나도 교회를 지킵니다. 공산당이 내려와도 교회를 지킵니다.
 
 약 30년의 사역을 하였던 바울이 유언처럼 남긴 디모데후서는 보석 같은 책입니다.
 
 성도의 성격이 어떤지, 교회의 목회가 얼마나 힘든지, 사역의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진솔하게 담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압니다. 자기도 곧 죽을 것이고, 그리고 때가 되면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도 죽을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신 주님의 마음도 알았을 것입니다.
 
 무리는 결코 힘이 되지 못하고, 주님의 일꾼은 결코 무리들 가운데 일어나지 않음을 밝힙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교회 중에서 가장 위대한 교회는 에베소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자기끼리 천국이었습니다. 물론 세상으로부터도 칭송을 받긴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는 그 도시 전체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복음의 영향력이 사회에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 교회가 에베소교회였습니다. 마술을 하던 사람들이 그들이 보던 책들을 불살라 버릴 정도였습니다.
 
 바울에게서 가장 강력한 영적 능력이 나타난 곳이고, 그가 유일하게 두란노 서원을 만들어 2년이란 세월을 날마다 강론하여 말씀을 가르친 곳이기도 합니다.
 
 뿐입니까? 자기의 아들 같은 디모데를 보내어서 목회를 하게 한 곳입니다.
 불과 5년 정도 전에는 에베소 교회에 편지도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방문하여 온 열정으로 목회한지 15년 정도도 안 되어서 에베소 교회는 골치 아픈 교회가 됩니다. 문제라는 문제는 다 등장을 합니다. 성도들은 형편없는 죄인들의 모습을 노출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가지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바울이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도 마지막으로 만나 애정을 쏟고 만났던 사람들이 에베소 장로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들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 20:28-30)
 
 걱정했던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편지를 써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했지만, 그런 성도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속에서 목회하는 디모데는 이런 저런 상처로, 마음이 편한 날이 없자 위장병이 생겼습니다. 바울이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바울이, 아들 같은 디모데에게 쓴 편지가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도 죽음을 앞에 두고 있지만, 자신의 죽음 못지않게 가슴을 저리게 하는 것은 힘들게 사역하는 디모데입니다.
 
 바울이 이미 에베소 성도를 통해 당한 아픔과 서러움이 많아서 더욱 더 짠한 마음으로 디모데를 보는 것입니다. 바울조차 버리고, 바울에게 조차 칼을 들이 댄 에베소 성도들입니다. 하물며 디모데이겠습니까?
 
 1장 15절에 보면, 상상할 수 없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모든 사람이 다 바울을 버렸다고 바울이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으면 그걸 밝혔을까요? 그런 사람을 안고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바울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입니다.
 
 아들아,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강해야 한다고 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바울을 부끄러워하고 고난을 싫어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네가 강해지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위로가 안 됩니다. 이미 에베소 성도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다 바울이 경험한 에베소 성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삼 년이나 밤 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행 20:31)한 결과가 그랬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53-57년을 보면, 거의 절반 이상을 에베소 교회에서 머문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디모에게 온 성도를 상대하지 말고, 진짜 충성된 일꾼을 골라서 그들에게 부탁하라는 것입니다. 그들 붙들고 목회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무리들은 사랑만 했습니다. 그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희망을 걸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그 방법을 디모데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성도가 충성하지 않는다. 일꾼은 따로 있다. 그들을 발굴해라.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라. 너 역시 죽는다. 너 죽기 전에 일꾼을 세워라. 충성된 일꾼을 세워라.
 
 그러면 네가 떠나도 그들이 교회를 지킬 것이다. 그들이 교회를 세워 나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죽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들이 훈련시킨 충성된 일꾼들이 이어갈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아들, 디모데 너도, 그리고 충성된 일꾼으로 세울 사람들도 모두
 
 군인이 되어야 하고,
 경기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농부가 되어야 한다. 고 가르칩니다.
 
 전쟁이 나면 일반 백성은 피난을 갑니다. 군인은 전쟁터로 갑니다.
 
 재미로 운동하는 사람은 힘들면 멈춥니다. 그러나 경기하는 자는 죽을 정도로 뜁니다.
 마라톤 대회를 보면 일반 경기가 있고 선수들이 하는 경기가 있습니다. 그냥 참가하는 시민들은 축제입니다. 걷다가 이야기 하다가 쉬다가 중간에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수는 다릅니다. 그들은 끝까지 죽을 정도로 달립니다.
 
 농부는 망해도 그 다음에 또 다시 씨를 뿌립니다.
 
 이렇게 충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있습니다.
 이들이 교회를 지킵니다.
 이들이 주님의 상급을 받습니다.
 
 이렇게 가르쳐도 요한이 쓴 요한 계시록에 보면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을 버렸다고 혼이 납니다.
 
 위대한 교회라고 큰 소리 치던 교회들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미국도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십시오.
 
 우리가 충성된 일꾼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길을 걷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죽은 자 가운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주님을 생각합니다. 내가 죽으면 예수님처럼 다시 사는 것입니다. 아니 바울은 이미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죽어야 사는 길이라는 것을 바울은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죽음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삼층천에 올라 하나님의 나라를 본 사람이기에 그는 수시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기에 이미 죽음을 초월한 신앙을 가진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연약한 인간이라, 자기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부겔로,
 허모게네,
 알렉산더,
 후메내오,
 
 이런 사람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보통 죽음의 자리에 가면 다 용서하기 마련인데, 바울은 이들이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여전히 내 아들 같은 디모데를 괴롭힐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도 조심하라.”고 밝힙니다.(딤후 4:15)
 
 인간은 절망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것이 인간인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들을 끌어안고 목회를 해야 하는 디모데를 두고 바울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가 많은 생각을 해서 총명해 지기를 바랍니다. (7)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사실을 밝힙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할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 할 수 없으시리라.” (11-13)
 
 성도를 보고 목회를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고 목회를 하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일꾼으로 살겠다고 했을 때, 담임목사를 보지 말고, 다른 성도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오직 예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사랑하신 그 분을 보라는 것이고
 죽음을 넘어 오는 천국을 보라는 것이고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 곳에 이를 때까지 결승점에 도착할 때까지 죽음을 내어 놓고 일을 하는 군인들처럼, 승리를 위하여 극한 상황을 뛰어 넘는 마라톤 선수처럼, 열매를 위해 바보처럼 또 다시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처럼 그렇게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어쩌면 상황이 그렇게도 같은지요.
 
 주님 앞에 나는 무리일까요?
 아니면 충성된 일꾼일까요?
 
 주님은 나에게 위로만 주시는 분입니까?
 아니면 나에게 십자가를 지라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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